PART 270431
30개월 / THE LAST DEPENDENCY

PART 27

자료 04310448

0431

설비·공정 복구 심의 개시 공고
Day 605 09:00
복구 심의 개시 공고
1. 정지 상태의 설비·공정에 대해 복구 여부 심의를 개시한다. 2. 심의 기준은 유지 가능성과 대체 가능성으로 한다. 3. 심의 결과는 유지·제외·보류로 구분하여 공고한다.

0432

심의 대상 집계 · 발췌
Day 610 17:00
심의 집계 (확정 전)
심의 대상412
유지 (예정)208
제외 (예정)147
보류57
· 확정 목록은 추후 공고.

0433

인터뷰
Day 615
증언대상 Day 615 14:00
담당하셨던 공정을 여쭙겠습니다.
엔지니어
제일 가는 선폭 쪽이었어요. 재난 전 기준으로도 국내에 몇 군데 없던 라인이에요. 지금은 정지 삼십 개월째고요.
다시 돌릴 수 있습니까.
엔지니어
도면은 있어요.
도면이 있으면 가능한 것 아닙니까.
엔지니어
만들 수는 없어요. 도면은 그 기계를 아는 사람이 읽으라고 만든 문서예요. 기계도 없고, 기계 만들던 회사도 없고, 읽을 사람도 저 포함 몇 명 안 남았는데, 저도 반만 읽어요. 제 전공 구간만요.
무엇부터 없습니까.
엔지니어
순서를 대자면, 장비, 소재, 사람, 그리고… 뭐라고 불러야 하나. 요령요. 장비가 있어도 그날 습도 보고 조건 트는 손이 있어야 해요. 그 손은 문서에 없어요. 교육 영상에 있냐 하면, 영상 속 손이 하필 화면 밖에서 움직여요. 찍은 사람이 기계를 찍었지 손을 안 찍었거든요.
그 손의 주인들은요.
엔지니어
안 계세요. 이제는요.
영상 세 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엔지니어
문서고로 갔어요. 저도 넘기기 전에 다시 봤어요. 몇 번을 봐도 화면 밖에서 조건이 바뀌어요. 압력계 바늘이 움직이는데 왜 움직였는지가 없어요. 보다가 웃었어요. 웃을 일이 아닌데, 삼십 년 뒤 누가 이걸 보면 저랑 똑같이 웃겠구나 싶어서요.
심의에서 어떤 결과를 예상하십니까.
엔지니어
제외겠죠. 저라도 제외에 놓겠어요. 이건 포기가 아니라 산수예요. 이 라인 하나 살리는 자원이면 표준 라인 여섯을 돌려요. 여섯은 지금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기계고요.

0434

공정 복구 필요 조건 대장 · 심의 자료
Day 620 10:00
필요 조건 (정밀 공정 1건)
전용 노광 장비제작사 소멸 · 국내 보유 2기 부품 공출
고순도 소재 3종공급 이력 없음 (전량 수입이었음)
공정 숙련자확인 0명
보정 요령문서화 안 됨 · 교육 영상 3편 (손이 화면 밖)
· 심의 첨부 자료. 판정 칸 없음.

0435

생활 게시판 · 저장본
Day 625 21:00
21:00
제외 목록에 뭐가 오르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저희 집 기계가 거기 걸리면 부품이 끊깁니다
21:08
확정 전이랍니다. 소문으로는 제일 가는 것들, 제일 복잡한 것들부터라고요
21:15
저는 그 복잡한 걸 고치던 사람입니다. 제 일이 목록에 오르는 걸 기다리는 기분이 묘합니다
21:23
고치던 손은 목록에 안 오릅니다. 다른 걸 고치면 되니까요. 힘 내십시오
21:31
고맙습니다. 그 말씀 받아 적어 두겠습니다
21:38
확정 나오면 여기 올려 주세요. 다들 자기 물건부터 찾아보게요

0436

복구 제외 목록 1차 공고
Day 630 09:00
복구 제외 목록 (1차)
1. 심의 결과 147개 항목을 복구 대상에서 제외한다. 2. 분류: 정밀 공정 31 · 특수 제어기 44 · 고정밀 등급 재료 39 · 기타 33. 3. 제외 항목의 도면·기록은 권역 문서고에 보존한다.

0437

인터뷰
Day 636
증언대상 Day 636 11:00
목록을 보셨습니까.
숙련자
봤어요. 둘째 줄에 있더라고요. 제 삼십 년이 둘째 줄 한 칸이에요.
어떠셨습니까.
숙련자
서운하냐고요? 서운하지요. 근데 저도 심의표를 보면 같은 칸에 동그라미 쳤을 거예요. 제 기술은 제가 제일 잘 아니까요. 이게 얼마나 많은 걸 잡아먹는 기술인지도요.
기술을 물려줄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숙련자
했지요. 두 번 받았어요, 배우겠다는 사람. 한 번은 그 시기에 흩어졌고, 한 번은 제가 보냈어요. 표준 쪽으로 가라고. 삼십 년 걸리는 기술을 배워서 쓸 데가 없어지는 것보다, 삼 년 걸리는 기술 배워서 평생 쓰는 게 낫잖아요. 스승이 할 소리는 아닌데, 스승이라서 할 수 있는 소리기도 해요.
그 기술을 마지막으로 쓰신 날을 기억하십니까.
숙련자
기억해요. 재작년 봄이에요. 부품 하나를 마지막 소재로 깎았어요. 깎으면서 알았어요.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그래서 평소보다 천천히 깎았어요. 잘 깎였어요. 그 부품은 지금도 어디선가 돌고 있을 거예요. 제 기술의 마지막 물건이 아직 일하고 있는 거지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무엇을 하실 겁니까.
숙련자
문서고 쪽에서 오라고 해요. 도면 정리를 도와 달라고. 제 도면을 제 손으로 갈무리하는 거지요. 마지막 일감으로 나쁘지 않아요. 남의 손에 맡기면 순서가 엉킬 물건들이거든요. 순서는 제가 알아요. 그거 하나는 아직 제가 제일 잘해요.

0438

개인 음성기록
Day 640 15:30
(녹음 시작. 실외. 바람)
윤재경
봉인된 정문 앞이다. 체인과 자물쇠. 안내문은 없다. 사진 한 장.
윤재경
문이 잠기는 방식에도 종류가 있다. 버려진 문은 아무렇게나 잠기고, 보존되는 문은 반듯하게 잠긴다. 이 문은 반듯하다. 체인이 두 번 감겨 있고, 자물쇠에 기름칠이 되어 있다. 잠근 손이 다시 열 날을 생각한 손이라는 뜻이다.
윤재경
열 날이 올지는 자물쇠도 모른다. 기름칠까지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녹음 종료)
봉인된 공장 정문. 체인과 자물쇠. 안내문 없음.
제외 공정 공장 · Day 640

0439

설비 봉인·보존 대장
Day 645 17:00
봉인·보존 (누계)
봉인 완료78
해체 예정12
문서고 반입상자 341
· 봉인 설비는 연 1회 상태 점검.

0440

봉인 작업 현장 녹취
Day 650 10:20
00:26:15
파일 손상 · 복구 가능 04:40~19:02
(복구 구간 시작. 실내. 넓은 공간의 울림)
작업 1
방청유 도포 끝. 다음 축.
작업 2
다음 축 확인. 여기 명판은 어떻게 해요?
작업 1
명판은 닦아서 그대로 둬. 떼지 마. 나중에 여는 사람이 뭔지 알아야지.
작업 2
확인. 닦아서 둔다.
(천 씌우는 소리. 끈 묶는 소리)
작업 1
덮개 모서리 접어. 물 고이면 안 돼.
작업 2
접었습니다. 이쪽 열은 끝.
작업 1
그럼 조명 내리고 나간다. 마지막에 사진 한 장 찍어. 대장에 붙이게.
작업 2
찍었습니다. …불 끕니다.
(스위치 소리. 발소리가 멀어진다)
(복구 구간 종료)

0441

인터뷰
Day 655
증언대상 Day 655 14:00
심의표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실무자
항목마다 칸이 여섯이에요. 지금 돌릴 수 있나. 부품이 나오나. 고칠 사람이 있나. 가르칠 수 있나. 대체가 있나. 없으면 어떻게 되나. 여섯 칸에 답을 채우면 판정은 거의 자동이에요. 저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칸이 정해요.
제외 판정을 내릴 때의 마음을 여쭙겠습니다.
실무자
처음엔 힘들었어요. 항목 하나가 누군가의 평생인 걸 아니까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요. 저희는 버리는 게 아니라, 안 돌아가는 것에 사람을 묶지 않는 겁니다. 묶여 있던 사람들이 풀려나서 돌아가는 데로 가요. 그게 심의가 하는 일이에요.
보류 57건은 무엇입니까.
실무자
여섯 칸 중에 두세 개만 빈 것들요. 사람이 나타나거나 부품 길이 열리면 유지로 갈 수 있는 것들. 보류는 희망 칸이에요. 매 분기 다시 봐요.
심의에 이의는 없습니까.
실무자
있어요. 받고 있어요. 이의가 제일 많은 항목이 뭔지 아세요? 자기 물건이 아니라 자기 기술이에요. 내 기계를 살려 달라가 아니라, 내가 하던 일이 표에서 지워지는 게 맞느냐. 그 이의에는 저희도 답이 짧아요. 표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

0442

복구 유지 목록 공고
Day 660 09:00
복구 유지 목록 공고
1. 심의 결과 208개 항목을 유지 대상으로 확정한다. 2. 유지 항목에는 부품 계보와 교육 과정을 우선 배정한다. 3. 보류 57개 항목은 분기별 재심의한다.

0443

생활 게시판 · 저장본
Day 665 20:30
20:30
저희 정미소 기계가 유지 목록에 있습니다. 사십 년 된 물건인데 목록에서 이름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게 좋네요
20:38
오래된 게 남는 시대입니다. 단순한 게 강한 거였어요
20:45
저희 집 우물 펌프도 유지랍니다. 스프링만 조심하면 백 년 간다고 수리 어르신이 그러셨습니다
20:53
유지 목록을 읽는데 물건 목록이 아니라 앞으로 살 방식의 목록 같습니다. 느리고, 고칠 수 있고, 오래 가는 것들요
21:01
좋은 말씀이라 받아 적습니다
21:08
다들 자기 기계 오래 쓰십시오. 오래 쓰는 게 이기는 겁니다

0444

인력 재배정 대장 · 발췌
Day 670 10:00
재배정 (제외 공정 인력)
이동 합계63
표준 공정 교육54
기록 보존 지원9
· 교육 기간: 과정별 3~9개월.

0445

인터뷰
Day 674
증언대상 Day 674 14:00
옮기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엔지니어
두 계절요. 첨단 쪽에서 표준 모터 라인으로 왔어요. 처음엔 솔직히, 유배 같았어요. 제가 하던 게 백이라면 여기는 이십쯤 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엔지니어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기 기계는 제가 끝까지 이해해요. 축부터 권선까지, 어디서 왜 죽는지, 어떻게 살리는지, 전부요. 전에 하던 건 제가 백 중에 여섯을 알았어요. 나머지 아흔넷은 장비랑 소프트웨어랑 외국 어딘가를 믿는 거였고요. 지금 저는 이십을 다 알아요. 여섯보다 이십이 커요. 산수가 그래요.
아쉬움은 없습니까.
엔지니어
있죠. 제가 배운 제일 예쁜 수학은 이제 쓸 데가 없어요. 가끔 종이에 끄적여요. 잊어버리지 않게. 쓸 데없는 걸 잊지 않는 것도 일이라고, 문서고 쪽 분이 그러더라고요. 그 말이 위로가 됐어요.

0446

인터뷰
Day 678
증언대상 Day 678 10:00
문서고에서 하시는 일을 여쭙겠습니다.
담당
들어오는 상자를 열고, 목록 만들고, 서가에 꽂아요. 지금까지 삼백마흔한 상자요. 도면, 공정서, 교육 영상, 실험 일지. 만들 수 없게 된 것들의 종이만 여기 다 모여요.
만들 수 없는 것을 왜 보존합니까.
담당
그 질문을 자주 받아요. 제 대답은 정해져 있어요. 못 만드는 건 지금이지, 영원이 아니에요. 그리고 설령 영원히 못 만들어도, 우리가 뭘 할 수 있었는지는 남아야 해요. 그건 만들 수 있냐 없냐하고 다른 문제예요.
서가를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담당
있어요. 생각보다요. 표준 공정 쪽 사람들이 와요. 옛 도면에서 부분만 떼서 써요. 통째로는 못 만들어도 모서리는 쓸모가 있거든요. 저는 그럴 때 제일 기뻐요. 죽은 종이가 아니라는 증거니까요.
보존 담당으로 마지막 말씀이 있다면요.
담당
여기는 무덤이 아니에요. 씨앗 창고에 가까워요. 심을 땅이 지금 없을 뿐이에요. 저는 습도만 지켜요. 땅은 다음 사람들 몫이고요.

0447

인터뷰
Day 681
증언대상 Day 681 14:00
오늘 도면을 직접 가져오셨습니다.
설계자
마지막 상자예요. 사십 년 치 중에 이게 마지막. 남한테 맡기면 순서가 엉켜요. 도면은 순서가 반이에요.
상자를 넣으실 때 어떠셨습니까.
설계자
시원섭섭이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은 시원이 조금 더 컸어요. 얘들이 갈 데가 생긴 거잖아요. 집에 두면 저 죽고 나서 폐지가 될 종이들이, 여기서는 목록에 오르고 습도 관리를 받아요. 종이 팔자로는 출세지요.
도면이 다시 읽힐 날이 올 거라고 보십니까.
설계자
모르지요. 근데 저는 도면을 그릴 때부터 그 생각으로 그렸어요. 도면은 편지 같은 거예요. 받는 사람이 아직 안 태어났을 뿐이지. 제가 못 볼 답장을 기다리는 거고요. 편지는 원래 그래요. 부치고 나면 제 일은 끝이에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설계자
문서고 습도 잘 지켜 달라고 써 주세요. 그거 하나면 됩니다.

0448

개인 음성기록
Day 685 16:00
(녹음 시작. 실내. 조용함)
윤재경
문서고 서가 사이에 서 있다. 도면 통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 한 장.
윤재경
이번 취재에서 받아 적은 것. 도면은 있고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잠근 자물쇠에 기름칠을 한다는 것. 못 만드는 건 지금이지 영원이 아니라는 것. 도면은 받는 사람이 안 태어난 편지라는 것.
윤재경
버린 것들의 회차를 정리하며 알았다. 버려진 것은 없다. 잠기고, 덮이고, 꽂혔을 뿐이다. 버림과 보존이 같은 손동작인 시대다.
윤재경
습도계가 벽에 걸려 있다. 바늘이 가운데에 있다. 오늘 이 방은 답장을 기다리기에 알맞다.
(녹음 종료)
문서고 서가. 도면 통들이 줄지어 꽂혀 있다.
권역 문서고 · Day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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