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 THE LAST DEPENDENCY
PART 24
자료 0392 – 0394
0392
인터뷰
Day 495
증언대상 Day 495 14:00
—
그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책임자
어느 날요.
—
설비가 선 날요.
책임자
새벽에 전화 받고 나왔어요. 두 시 좀 넘어서요. 트립이야 겨울엔 흔하니까,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어요. 재기동 걸고, 됐고, 낮에 또 떨어지고. 그때부터 소리가 달랐어요. 축계 소리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어요. 쇠가 쇠를 갉는 소리.
—
소리로 아는 겁니까.
책임자
이 일은 절반이 귀예요. 계기가 알려 주기 전에 소리가 먼저 알려 줘요. 계기는 이미 벌어진 걸 재는 거고, 소리는 벌어지는 중인 걸 들려주는 거예요. 그날 낮 소리는, 벌어지는 중이었어요. 한참 된 중이었고요.
—
그 뒤의 경과를 여쭙겠습니다.
책임자
다음 날 세 번 걸었어요. 세 번째 걸 때는 걸면서 알았어요. 안 될 거라는 거. 그래도 걸어요. 사람이 하는 일이 그래요. 안 될 걸 알면서 세 번째를 거는 거. 그러고 세웠어요. 열세 달째에 그 line이 완전히 나갔습니다.
—
열세 달째라는 것은.
책임자
그 일이 시작되고 열세 달째요. 저희는 시간을 그렇게 세요. 달력 말고. 몇 달째, 몇 달째. 그 셈으로 열셋이었어요.
—
그 전에 징후는 없었습니까.
책임자
있었죠. 진동값이 가을부터 조금씩 올라왔어요. 일지에 다 있어요. 올라오는 건 알았는데, 올라오는 속도가 겨울에 확 붙었어요. 한파에 새벽 기동이 늘면 축계가 제일 먼저 앓아요. 알고는 있었어요. 아는 거하고 막는 거는 다른 일이고요. 막으려면 부품이 있어야 했고, 부품은… 아까 말씀드렸고요.
—
예비 부품은 없었습니까.
책임자
한 벌 있었어요. 작년에 썼어요. 그때도 여쭤보셨죠, 아마. 대답이 같아요. 청구는 올라가 있었고, 저희 순번은 안 왔어요.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데가 줄을 서 있었어요.
—
그 뒤에 깎아서 맞추셨다고 들었습니다.
책임자
어르신이 깎으셨죠. 열흘 깎아서 넣었고, 다섯 달 갔어요. 정품이 십 년 가는 자리에서 다섯 달이면, 저는 성공이라고 불러요. 지금 두 벌째 돌고 있어요. 첫 벌보다 오래 갈 거예요. 깎은 사람이 늘었거든요. 어르신이 가르친 둘이 이번 걸 깎았어요.
—
어르신 이야기를 더 여쭙겠습니다.
책임자
처음 오셨을 때 도면을 사흘 보셨어요. 아무것도 안 깎고요. 저희는 속이 탔죠. 나흘째 아침에 그러시더라고요. 이 자리는 원래 설계가 과했다고. 과한 데는 깎은 걸 넣어도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알았어요. 이분은 도면 너머를 보시는구나.
책임자
지금 배우는 둘은 저희 직원이에요. 하나는 스물아홉, 하나는 서른셋. 어르신이 그래요. 손은 삼 년이면 배우는데 겁은 삼십 년 걸린다고. 겁을 배우라고. 뭘 깎으면 안 되는지 아는 게 기술이라고요.
—
설비가 서 있던 동안을 여쭙겠습니다.
책임자
마흔며칠요. 저희는 그 마흔며칠 동안 여기 안에만 있었어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몰랐어요. 배차가 어떻게 줄고, 그 줄인 게 어디까지 가는지. 저희 일은 여기 이 기계를 다시 돌리는 거였고, 돌렸어요. 그게 저희가 아는 전부예요.
—
그 마흔며칠 동안 하루는 어떻게 갔습니까.
책임자
아침에 분해한 걸 보고, 잴 수 있는 건 재고, 어르신 옆에 서 있고. 저녁엔 일지 쓰고. 일지에 쓸 게 없는 날이 제일 힘들어요. 진행이 없다는 걸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금일 계측 계속"이라고 쓰고 퇴근하는 날이 스무 날은 됐을 거예요.
—
지금 그 마흔며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책임자
짧았다고 생각 안 해요. 하루하루 셌으니까요. 근데 긴 줄도 몰랐어요. 어디까지 길었는지는… 저희 자리에선 안 보여요. 그건 지금도 안 보여요. 안 보이는 게 저희 잘못은 아닌데, 요즘은 가끔, 안 보였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책임자
기계는 다시 돌아요. 지금도 돌고 있어요. 소리 들리시죠. 저 소리가 정상이에요. 저는 이 소리를 남기고 싶어요. 나간 소리 말고, 도는 소리요.
0393
인터뷰
Day 502
증언대상 Day 502 10:00
—
그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담당
표를 다시 짰어요. 그게 제 일이에요. 표가 무너지면 다시 짜는 거.
—
표가 무너진 것을 언제 아셨습니까.
담당
아침 회의 전에요. 가스 배차 조정이 내려와 있었어요. 종이 한 장인데, 그 한 장이면 그 주 표 전체가 다시예요. 저는 그런 종이를 받으면 일단 커피부터 타요. 긴 하루라는 뜻이니까요.
—
무너진 이유를 여쭙겠습니다.
담당
질소가 줄었어요. 저희 라인 몇 개가 질소 없이는 못 여는 라인이라, 열 수 있는 라인으로 물량을 몰았어요. 대체 line으로 돌리면서 서른여섯 시간 밀렸죠.
—
서른여섯 시간은 어떻게 나온 숫자입니까.
담당
세척 여덟 시간, 건조 여섯, 검증 열둘, 시운전하고 첫 batch 걸기까지 열. 더하면 서른여섯이에요. 줄일 수 있는 칸이 없어요. 무균은 서두를 수가 없어요. 서두르면 무균이 아니게 되니까요. 서른여섯 시간은 저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숫자였어요. 지금도 그래요.
—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담당
라인 옆에 있었어요. 검증은 기다림이 반이에요. 배양 결과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기다림 동안 표를 짰어요. 밀린 번호들을 어디에 다시 넣을지. 마흔 몇 개 번호를 종이에 놓고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밤새요.
—
종이로 하십니까.
담당
마지막엔 늘 종이예요. 화면으로 옮기면 화면이 맞다고 해요. 화면은 규칙만 보니까요. 종이에 놓고 보면 규칙 사이가 보여요. 이 번호를 여기 넣으면 누가 밀리는지가, 화면에선 안 보이고 종이에선 보여요. 이상한 얘기죠. 근데 이 층 사람들은 다 종이 한 장씩 갖고 있어요.
—
밀린 것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담당
번호 순으로 다시 들어갔어요. 저희 표에는 번호만 있어요. 사번호 몇, 사번호 몇. 뭐가 되는 약인지는 저희 층에서 안 보여요. 그건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네요.
—
여유 슬롯은 없었습니까.
담당
원래 한 주에 슬롯 하나를 비워 놔요. 급한 게 들어올 자리로요. 그 겨울엔 그 자리가 계속 차 있었어요. 응급 물량이요. 한파 때 병원 쪽으로 나가는 것들. 그래서 밀린 게 밀린 자리로 못 들어가고, 뒤로 갔어요.
—
그 배치를 결정한 것은 누구입니까.
담당
결정이라기보다… 규정이에요. 응급이 슬롯을 잡으면 잡는 거예요. 누가 앉아서 이걸 밀고 저걸 넣고 한 게 아니에요. 표가 그렇게 짜여요. 저는 표가 시키는 대로 짰고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그 주에 저희 표는 한 칸도 틀리지 않았어요. 다 맞게 짰는데, 서른여섯 시간이 생겼어요.
—
응급 물량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담당
한파 때 병원으로 나가던 것들요. 저희 표에서는 그것도 번호예요. 응급 번호가 앞자리를 잡으면 일반 번호가 뒤로 가요. 그 겨울 내내 앞자리가 응급이었어요. 병원 쪽에서는 저희가 생명줄이었을 거예요. 같은 표가 어느 쪽에서 보면 생명줄이고 어느 쪽에서 보면… 그 반대고요.
—
표를 짜는 일을 여쭙겠습니다.
담당
사람들이 표는 기계가 짜는 줄 알아요. 기계는 검증만 해요. 짜는 건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표에는 매번 빈자리가 모자라거든요. 모자란 걸 나누는 건 계산이 아니에요. 그건… 뭐라고 해야 하나. 계산이 끝난 다음에 남는 일이에요. 그 일을 십 년 했어요.
—
그 서른여섯 시간을 생각하십니까.
담당
그때는 아니요. 숫자였으니까요. 요즘은… 요즘은 표를 짤 때 그 숫자를 한 번 더 봐요. 서른여섯이 뭘 할 수 있는 시간인지 저는 몰라요. 모르는 채로 한 번 더 봐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담당
저희 층 사람들은 자기가 만드는 게 뭔지 모르고 만들어요. 그게 냉정해 보인다는 거 알아요. 근데 그 덕에 모든 번호가 같은 정성을 받아요. 저는 그게 이 층의 윤리라고 생각해요. 지금도요. 다만… 번호 하나가 표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 그 아래가 어딘지 한 번씩 생각해요. 전엔 안 그랬어요.
0394
인터뷰
Day 510
증언대상 Day 510 15:00
—
그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담당
편성표를 냈어요. 아침에 낸 표에 배 아홉 척. 그중에 하나가 그 배예요.
—
그날 아침을 기억하십니까.
담당
평범했어요. 그게 제일 이상해요. 특별한 날이었으면 기억이 특별할 텐데, 그냥 아침이었어요. 커피 마시고, 밤사이 기상 보고 보고, 아홉 척 편성 내고. 도장 아홉 번. 그중 한 번이 그 배였고, 도장 찍을 때 느낌은 여덟 번하고 똑같았어요.
—
그 편성의 경위를 여쭙겠습니다.
담당
원래 축이 닫혀 있어서 남부 우회선으로 보냈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어요. 직항이 닫힌 지 몇 달째였고, 저희 표에서 남쪽 돌아가는 건 그냥 평범한 편성이었어요. 그 주에만 열몇 번 냈을 거예요, 같은 편성을.
—
그 배에 무엇이 실렸는지 아셨습니까.
담당
저희 표엔 화물 구분만 나와요. 보냉 몇, 일반 몇. 내용은 안 나와요. 나와도 안 봅니다. 봤으면 이 일 못 해요. 배 한 척에 실리는 게 몇백 가지인데, 그걸 다 알면서 표를 내는 사람은 없어요.
—
남부 우회선은 어떤 길입니까.
담당
멀어요. 직항의 배 반쯤 더 걸려요. 그리고 그 계절엔 바람이 돌아요. 위험하냐고 물으시면, 다니던 길이에요. 그 주에도 다른 배들은 다 다녀왔어요. 사고는 어느 길에서든 나요. 그 길이라서 난 게 아니라, 나던 날 그 배가 그 길에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렇게 정리해요. 정리가 안 되는 날도 있고요.
—
그 뒤의 일을 여쭙겠습니다.
담당
거기서 사고가 났어요. 저녁에 보고 받았어요. 인명은 넷 다 구조됐고. 저는 그날 밤에 대체 편성을 뒤졌어요. 밤새요. 전화 여덟 군데 돌렸어요. 수리 중인 배, 다른 축에 묶인 배, 연료 배정이 없는 배. 없었어요. 예비로 잡아 둘 배가 없었어요.
—
화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담당
배가 가라앉진 않았어요. 예인돼서 들어왔는데, 보냉 화물은 시간이 지나 있었어요. 보냉은 시간이 화물이에요. 상자가 멀쩡해도 시간이 깨지면 깨진 거예요. 그건 저희 표 밖의 일이라, 처리가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요.
—
알고 싶으셨습니까.
담당
(잠시 무음) 아니요. 그때는 아니요. 알면 다음 표를 못 내니까요. 표는 다음 날 아침에도 나가야 했어요. 아홉 척이든 여덟 척이든, 아침엔 표가 나가야 해요. 그게 이 자리예요.
—
예비 선박은 원래 있습니까.
담당
있었어요. 두 척. 그 겨울에 회수 물량 이송에 배정됐어요. 도시광산에서 나오는 것들요. 그것도 급했으니까요. 겨울 나려면 그 물량이 돌아야 했어요.
—
왜 여유가 그것밖에 없었습니까.
담당
(잠시 무음) 그 질문을 저도 해요. 매일요. 대답을 드리면, 여유는 있었어요. 부품에 한 벌, 슬롯에 한 칸, 배에 두 척. 다 있었어요. 다 쓰였어요. 다 맞는 데 쓰였어요. 하나하나는요. 근데 같은 겨울에 다 쓰이니까, 정작 그 주에는 아무 데도 여유가 없었어요.
—
지금이라면 다르게 하시겠습니까.
담당
그 겨울로 돌아가면 또 그렇게 할 거예요. 그때 가진 표로는 그게 맞았으니까요.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데, 다 맞게 했는데 이렇게 되면, 뭘 고쳐야 하는지 모르니까요.
—
그 뒤에 바뀐 것이 있습니까.
담당
지금은 예비 한 척을 무조건 비워 둬요. 규정이 됐어요. 배가 놀아도 비워 둬요. 노는 배를 보면 다들 아까워해요. 저는 안 아까워요. 저 비어 있는 게 그 겨울 값이에요. 비싸게 배운 빈자리예요.
—
그 규정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담당
제가 올렸어요. 사고 나고 한 달 뒤에요. 문서 한 장 쓰는 데 한 달 걸렸어요. 쓰는 건 십 분인데, 쓰겠다고 마음먹는 데 한 달요. 그 문서에 사유를 쓰는 칸이 있는데, 거기 뭐라고 썼는지 아세요. "재발 방지"라고 썼어요. 네 글자요. 그 네 글자 뒤에 있는 걸 다 쓰면 문서가 안 되니까요.
—
(질문 없음)
담당
…더 여쭤보실 게 있습니까.
—
없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