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 THE LAST DEPENDENCY
PART 23
자료 0374 – 0391
0374
인터뷰
Day 455
증언대상 Day 455 10:00
—
그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담당
어느 날요?
—
반입이 끝난 날요.
담당
검수를 했어요. 목록하고 실물하고. 이틀 걸렸어요. 하나하나 번호 대조하고, 온도 이력 확인하고. 밤에 퇴근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더라고요. 안 맞을까 봐요. 다 맞았어요.
—
지금의 하루를 여쭙겠습니다.
담당
아침에 잔량 재고, 계기 돌아보고. 예전엔 시설마다 하던 일을 이제 한 지붕에서 해요. 동선은 짧아졌는데 책임은 넓어졌지요.
—
반입 목록에서 한 곳이 비어 있습니다. 미이송 한 곳. 사유 칸이 비어 있는데요.
담당
네. 저희도 그 칸은 빈 채로 받았어요.
—
누가 채울 수 있는 칸입니까.
담당
저희가 답할 자리가 아닙니다. 저희는 온 것을 지키는 데예요. 안 온 것에 대해서는… 저희 장부엔 칸이 없어요.
—
그 빈 칸이 채워지기를 바라십니까.
담당
바라죠. 장부 하는 사람은 빈 칸을 못 견뎌요. 근데 제가 채우면 그건 장부가 아니라 소설이에요. 아는 사람이 채워야죠. 어딘가에 있겠죠, 아는 사람이.
0375
인터뷰
Day 455
증언대상 Day 455 14:00
—
충전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담당
열흘에 한 번요. 공급이 돌아온 뒤로는 밀린 적 없어요. 저번 겨울 같은 일은, 당분간은 없을 거라고들 해요. 당분간이라는 말이 붙는 게 요즘 말버릇이에요.
—
잔량 관리를 여쭙겠습니다.
담당
아침저녁으로 재요. 수치가 예정선 위에 있으면 그날은 좋은 날이에요. 좋은 날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것도 기록에 남겨 주세요. 좋은 날도요.
—
남기겠습니다.
담당
고맙습니다. 나쁜 날만 남으면, 나중에 보는 사람들이 우리가 늘 지고만 있었다고 알 거 아니에요. 이기는 날도 있었어요.
—
이기는 날은 어떤 날입니까.
담당
아무 일 없는 날요. 계기 보고, 적고, 퇴근하는 날. 그게 이기는 거예요, 이 일은. 지는 날은 하루면 다 무너지는데, 이기는 날은 하루씩밖에 못 이겨요. 그래서 매일 나와요.
0376
개인 음성기록
Day 456 21:30
(녹음 시작. 실내)
윤재경
두 건 정리 끝. 녹취 풀고 파일 번호 붙였다.
윤재경
내일은 농촌. 자전거로 한 시간. 여섯 시 반 출발. 질문지는 만들어 둔 것 그대로 쓴다.
(녹음 종료)
0377
귀농·귀촌 임시 배정 안내
Day 457 09:00
귀농·귀촌 임시 배정 안내
1. 정비된 빈집과 휴경 농지를 희망자에게 임시 배정한다.
2. 신청은 읍면 창구에서 받는다. 기한 없음.
3. 배정 후 두 계절 경작 시 연장을 우선한다.
0378
인터뷰
Day 458
증언대상 Day 458 11:00
—
그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촌로
어느 날?
—
우물을 다시 연 날요.
촌로
아침에 두레박부터 내렸지. 삼십 년 만에. 물이 올라오는데, 냄새를 맡아 보니까 옛날 그 물이야. 쇠 냄새 조금 나고, 차고. 동네 사람들이 다 한 모금씩 마셨어. 검사는 나중에 받았고. 합격했어.
—
수도가 끊긴 뒤의 일입니까.
촌로
끊긴 게 아니고, 오다 말다 해. 오다 말다 하는 물은 못 믿어. 우물은 늘 있어. 전기도 기름도 안 들고.
—
요즘 마을의 형편을 여쭙겠습니다.
촌로
여긴 오히려 전보다 좀 낫습니다.
—
낫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촌로
물이 다시 나오고. 밭이 남아돌고. 집도 남고. 도시서 몇 집 내려왔어. 애 소리도 나고. 우리야 원래 없이 살던 사람들이라, 없는 게 늘어난 건지 있는 게 늘어난 건지… 헷갈리는데, 살기는 나아. 그건 맞아.
—
없이 살던 방식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촌로
도움이 아니라 그게 전부지. 소 부리는 법, 종자 받는 법, 두레 도는 법. 그거 다 버린 동네들은 지금 배우러 다녀. 우리는 안 버렸어. 게을러서 안 버린 건데, 지금 와서는 잘한 게 됐어. (웃음)
—
어려운 점은 없으십니까.
촌로
왜 없어. 약이 없지. 무릎 약, 혈압 약. 보건소가 한 달에 두 번 와. 오는 날은 잔칫날이야. 그리고 부고가 와도 갈 수가 없어. 먼 데 부고는 편지로만 받아. 가서 곡도 못 하고. 그게 어렵지. 사는 건 살아져. 못 가는 게 어려워.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촌로
우물 물 한 모금 마시고 가. 기록하는 사람이면 물맛도 기록해야지. 글로 어떻게 쓸지는 모르겠는데. (웃음)

0379
마을 우물 사용 대장
Day 458 15:00
우물 사용 대장
| 재개 우물 | 3곳 (안말 · 샘골 · 회관 앞) |
| 수동 펌프 | 2대 |
| 수질 확인 | 452일 · 적합 |
| 다음 확인 | 482일 예정 |
· 두레박 사용 시 덮개를 닫을 것.
0380
밭 작업 현장 녹취
Day 460 06:40
(실외. 새벽. 새소리)
일손 1
이랑 그쪽부터. 줄 맞춰서.
일손 2
감자는 눈 위로 가게. 그렇지.
(호미 소리. 흙 밟는 소리)
일손 3
소 나간다. 길 비켜요.
(워낭 소리. 소 모는 소리)
일손 1
새참은 아홉 시. 회관에서 가져온대.
일손 2
오늘 다 심으면 낼은 콩이야.
(멀리 닭 우는 소리)
0381
인터뷰
Day 461
증언대상 Day 461 13:00
—
품앗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쭙겠습니다.
회장
장부가 있어요. 누가 어느 밭에 몇 나절 갔는지. 나절로 셈해요. 돈은 안 써요. 돈 쓸 데가 없기도 하고요.
—
새로 온 분들도 들어옵니까.
회장
들어오죠. 처음엔 반 나절로 쳐요. 일이 서투니까.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두 달이면 한 나절 되니까 금방이에요. 셈이 공평해야 오래가요. 인심은 셈 위에 얹는 거고요.
—
회관 저녁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회장
혼자 먹는 집이 늘어서요. 혼자 먹으면 대충 먹잖아요. 큰솥에 하면 반찬 가짓수가 늘어요. 쌀은 각자 내고, 반찬은 밭에서 나오는 대로. 아이들 숙제도 회관에서 하고요. 저녁이 마을 일이 됐어요.
—
새로 온 세대들은 잘 섞입니까.
회장
밥이 섞어 줘요. 낮에 서먹했던 것도 저녁상에서 풀려요. 숟가락 부딪치면서 친해지는 건 어디나 같아요. 도시에서 온 분들이 처음엔 미안해하면서 먹는데, 미안해하지 말라고 해요. 가을에 밭에서 갚으면 되니까요.
0382
농지 임시 경작 배정 대장
Day 462 17:00
경작 배정 대장
| 휴경 면적 | 14.2ha |
| 배정 면적 | 6.5ha |
| 배정 인원 | 11명 |
| 작목 | 감자 4 · 콩 3 · 조 2 · 채소 2 |
· 잔여 휴경지는 가을 배정분으로 남긴다.
0383
지역 게시판 · 저장본
Day 464 20:30
20:30
도시에서 내려가려고 알아보는 중입니다. 농사 경험 없는데 배정 받을 수 있을까요
20:38
저 작년에 내려온 사람입니다. 경험 없어도 받습니다. 대신 두 계절은 버티셔야 합니다. 첫 계절에 손 다 물집 잡히고 반쯤 후회합니다
20:46
후회 다음엔 뭐가 옵니까
20:52
가을이 옵니다. 캔 감자를 손에 들면 생각이 바뀝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21:00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게 제일 걸립니다
21:08
여기는 회관에서 모아 가르칩니다. 선생님 하시던 분이 두 분 내려와 계세요. 애들이 도시보다 낫다고 합니다. 밭이 운동장이라서요
21:16
다들 고맙습니다. 창구 가서 신청부터 해 보겠습니다
21:24
하나만 더요. 겨울 오기 전에 내려오세요. 첫 계절이 봄이어야 버팁니다. 겨울부터 시작하면 집이 감옥 같습니다
21:31
명심하겠습니다. 다음 달 안에 움직이겠습니다
0384
인터뷰
Day 466
증언대상 Day 466 11:00
—
내려오신 결정을 여쭙겠습니다.
이주자
도시에선 제 일이 대기하는 일이었어요. 물건을 기다리고, 순번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게 일이 되니까 사람이 얇아지더라고요. 여기서는 기다리는 게 달라요. 심어 놓고 기다리는 건 일이 있는 기다림이에요.
—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이주자
불 때는 법, 물 긷는 법, 소 옆에서 걷는 법. 처음엔 소가 무서웠어요. 지금은 소가 저를 무서워 안 하는 게 자랑이에요. (웃음) 그리고 저녁요. 저녁을 같이 먹는 법을 배웠어요. 그게 제일 큰 거예요.
—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십니까.
이주자
가끔요. 근데 돌아가서 뭘 기다릴지 생각하면, 여기 남아서 가을 기다리는 게 나아요.
—
도시에 두고 온 것이 있습니까.
이주자
짐은 다 가져왔어요. 두고 온 건… 순번들요. 대기 명단들. 내 이름이 아직 어딘가 명단에 올라 있을 텐데, 그 이름은 이제 저 말고 명단이 갖고 있는 거예요. 여기 제 이름은 품앗이 장부에 있어요. 나절 옆에요. 그게 더 제 이름 같아요.
0385
빈집 정비·배정 공고
Day 470 09:00
빈집 정비·배정 공고
1. 정비 완료 9호를 배정 대상으로 공고한다.
2. 신청 순이 아니라 세대 구성과 경작 계획을 보아 배정한다.
3. 입주 후 첫 겨울 땔감은 마을 공동분에서 지원한다.
0386
빈집 현황 대장
Day 472 16:00
빈집 현황
| 빈집 | 23호 |
| 정비 완료 | 9호 |
| 정비 예정 | 6호 |
| 보존 곤란 | 8호 |
· 보존 곤란 호는 자재 회수 후 철거 예정.
0387
인터뷰
Day 475
증언대상 Day 475 14:00
—
요즘 고치시는 것들을 여쭙겠습니다.
노파
경운기는 이제 안 고쳐. 기름이 없는데 고쳐서 뭐 해. 호미, 쟁기, 리어카, 펌프. 그런 거 고치지. 영감 연장이 창고에 그대로 있어서, 내가 하나씩 꺼내 쓰는 거야.
—
원래 수리 일을 하셨습니까.
노파
영감이 했지. 나는 옆에서 오십 년 봤고. 보면 알아. 손이 기억하는 게 아니고 눈이 기억해. 영감 손이 어디를 먼저 만졌는지.
—
소로 가는 밭은 어떻습니까.
노파
소가 낫지. 소는 고장이 안 나. 배고프고 아플 뿐이지. 배고픈 건 먹이면 되고 아픈 건 쉬게 하면 돼. 기계는 부속이 없으면 그냥 끝이야. 요즘 부속 구하기가 소 구하기보다 어려워.
—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십니까.
노파
배우러 와. 도시서 온 색시들이 제일 열심이야. 쟁기 날 가는 거 가르쳐 줬더니 사흘을 갈아. 너무 갈아서 날이 반이 됐어. (웃음) 그래도 그렇게 배우는 거야. 나도 그랬고.
—
고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파
스프링. 용수철 말이야. 그건 강이 달라서 여기선 못 만들어. 펌프에 하나 들어가는데, 그게 나가면 펌프가 끝이야. 그래서 펌프 쓸 때 살살 쓰라고 해. 연장은 급하게 쓰는 사람 손에서 죽어. 천천히 쓰면 오래 살고. 사람도 비슷하고.
0388
마을회관 저녁 녹취
Day 478 18:30
00:42:10
파일 손상 · 복구 가능 07:12~31:40
파일 손상 · 복구 가능 07:12~31:40
(복구 구간 시작. 실내. 솥뚜껑 소리)
목소리 1
상 하나 더 펴. 오늘 열둘이야.
목소리 2
애들은 저쪽에서 숙제 먼저 하고.
(아이들 소리. 웃음)
목소리 3
오늘 무국이야? 냄새 좋다.
목소리 1
무는 샘골 밭에서 왔고, 된장은 작년 거 마지막이야. 올해 콩 되면 새로 담가야지.
(그릇 놓는 소리. 숟가락 소리)
목소리 4
보건소 다음 오는 날이 언제랬지.
목소리 1
열흘 뒤. 회관 게시판에 붙여 놨어.
목소리 2
다음 주에 지붕 이는 집, 일손 셋만 더 있으면 하루에 끝나.
목소리 3
우리 집 둘 갈게. 나절 셈으로 달아 놓고.
(웃음. 아이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
목소리 1
뛰지 말고 먹고 나서 뛰어.
(복구 구간 종료)
0389
지역 게시판 · 저장본
Day 482 21:00
21:00
감자 씨 남는 것 두 상자 있습니다. 회관 앞에 두겠습니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21:07
콩 종자 필요하신 분, 저희 집 마루에 있습니다. 조금씩 나눠 담아 뒀습니다
21:15
한 상자 받아 갑니다. 가을에 캐면 두 상자로 갚겠습니다
21:22
갚는 건 장부에 적지 말고 그냥 심으세요. 씨는 돌라고 있는 겁니다
21:30
배추 모종 스무 포기 나눔합니다. 저녁 회관에서요
21:38
이 게시판이 요즘 제일 바쁜 게시판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0390
마을 대장 · 발췌
Day 484 10:00
마을 대장 (발췌)
| 세대 | 48 |
| 인구 | 87 |
| 빈집 | 23호 (배정 진행 9호) |
| 금년 전입 | 6세대 12명 |
· 전입 세대는 두 계절 경작 후 정식 등재.
0391
개인 음성기록
Day 485 20:00
(녹음 시작. 실외. 저녁 새소리)
윤재경
취재 마지막 날. 배정 예정이라는 빈집을 봤다. 마당에 감나무. 평상. 마루에 볕이 들었다. 사진 한 장.
윤재경
이번 취재에서 받아 적은 것. 우물 세 곳. 나절 셈. 반 나절에서 한 나절까지 두 달. 씨는 돌라고 있는 것. 소는 고장이 안 난다는 것. 연장은 급하게 쓰는 사람 손에서 죽는다는 것.
윤재경
우물 물을 마셨다. 쇠 냄새가 조금 나고, 차다. 물맛을 기록해야 한다고 해서 적는다. 오래된 맛이다. 오래된 것이 남아서 새 일을 하는 맛.
윤재경
돌아가면 녹취를 풀고 번호를 붙인다. 다음 취재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녹음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