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 THE LAST DEPENDENCY
EPILOGUE
자료 0503 – 0503
0503
인터뷰
Month 100
증언대상 Month 100
윤재경
하루를 여쭙겠습니다.
어머니
여섯 시 반에 일어나요. 물 올리고, 애 깨우고. 밥 먹이고 여덟 시에 학교 보내요. 걸어서 십오 분이에요. 큰길까지만 데려다주면 거기부터는 애들끼리 가요. 우르르.
윤재경
학교는 어떤 곳입니까.
어머니
면에 하나 있는 학교예요. 한 반에 열몇 명. 선생님이 세 분인데 한 분은 기계도 가르쳐요. 애들이 운동장 반, 실습장 반이에요. 실습장에 진짜 펌프가 있어서 애들이 뜯었다 조립했다 해요. 우리 애는 그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요.
윤재경
학교를 다녀오면요.
어머니
마당에서 놀아요. 지금도 저러고 있잖아요. (뛰는 소리) 넘어지지만 않으면 부르지 않아요. 넘어져도 웬만하면 혼자 일어나요.
윤재경
어머님의 낮은 어떻게 갑니까.
어머니
밭에 나가요. 감자하고 콩. 파종 때는 마을 기계를 빌려요. 순번표가 있어서 이틀 기다리면 와요. 기계가 오는 날은 온 밭이 하루에 끝나요. 좋은 물건이에요. 느린데, 안 망가져요. 망가져도 면에 고치는 데가 있고요.
윤재경
기계는 마을 것입니까.
어머니
면 공동 소유예요. 넉 대. 관리하는 반이 따로 있고, 봄가을엔 그 반이 제일 바빠요. 빌리는 값은 곡식으로 내요. 장부에 나절로 적고요. 시어머니 말씀이, 옛날 두레가 기계를 얻은 셈이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윤재경
장은 어디서 보십니까.
어머니
닷새마다 장이 서요. 없는 건 많아요. 대신 있는 건 늘 있어요. 그게 중요한 거더라고요. 설탕이 두 달에 한 번 들어오는데, 들어오는 날짜가 정확해요. 적게 있어도 정확하면 살림이 돼요.
윤재경
장날 풍경을 여쭙겠습니다.
어머니
아침 기차로 물건이 오고, 리어카들이 역에서 장터까지 나르고. 그릇 때우는 아저씨가 한쪽에 앉고, 수리집 좌판에 고쳐진 물건들이 줄을 서요. 저녁엔 남은 채소를 서로 바꿔요. 애는 장날마다 뻥튀기 한 봉지. 그거 사려고 닷새를 심부름해요. (웃음)
윤재경
병원은요.
어머니
면에 진료소가 있고, 큰일이면 기차 타고 시내로 가요. 애 낳을 때 그렇게 갔어요. 그리고 애 주사 맞으러 다달이 진료소 가요. 한 번도 안 거른 게 자랑이에요. 수첩에 도장이 쉰몇 개예요.
윤재경
낳으실 때 이야기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머니
시내 병원에서 낳았어요. 그 병동은 서류가 많아요. 애 낳는 데가 아니라 관공서 같았어요. 그런데 간호사분들이, 서류 사이사이에 정말 잘해 주셨어요. 퇴원할 때 병동 분들이 복도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셨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하시나 했어요. 지금은 알 것 같고요.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윤재경
주사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머니
뭘요? 저는 잘 몰라요. 다달이 맞는 거고, 안 아프게 놔 주시고. 만드는 데는 멀대요. 기계 쪽 큰 단지, 기차로 두 시간 가는 데. 애 낳기 전에 서류 쓸 때 한 번 가 봤어요. 크더라고요. 그게 다예요. 저는 수첩에 도장 받는 사람이고, 그쪽은 주사를 보내는 데고.
윤재경
아이는 자기가 주사 맞는 걸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머니
아무 생각 없어요. 이 가는 날처럼 그냥 가는 데예요. 친구들도 다 맞으니까요. 쟤들한테는 그게 세상이에요. 원래 그런 거.
윤재경
또래가 몇이나 됩니까.
어머니
우리 면에 그 또래 사내애들이 아홉이에요. 계집애들까지 하면 스물몇이고. 아홉이 몰려다니면 동네 어른들이 다 나와서 봐요. 애들은 왜 보는지 몰라요. 달리기하다 말고, 왜 보세요, 그러고. 어른들이 그냥 웃죠. 그냥 봐서 좋은 게 있단다, 하고.
윤재경
어른들 마음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머니
제가 어른들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는데요. 하나는 알아요. 저 소리요. (마당 쪽을 가리키는 기척) 뛰는 소리하고 떠드는 소리. 저 소리가 골목에서 끊겼던 시절을 아는 분들이에요. 소리가 돌아온 걸 듣는 얼굴들이 있어요. 그 얼굴은 설명이 안 돼요. 보셔야 해요.
윤재경
어머님께는요.
어머니
(사이) 저희 때는 원래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 정도만 할게요. 애 앞에서 길게 할 얘기는 아니에요.
윤재경
알겠습니다.
어머니
하나만 더 할게요. 애가 크면 언젠가 물을 거잖아요. 왜 주사를 맞느냐고. 그때 뭐라고 할지 미리 생각해 놨어요. 네가 태어날 수 있게 애쓴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 사람들이 보낸 거라고. 그렇게만 할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윤재경
아이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어머니
철도에 있어요. 보선반. 나흘 일하고 이틀 와요. 오는 날은 애가 역까지 마중을 가요. 아빠 오는 기차 소리를 구분해요. 다 같은 기차 소린데 자기는 안다고 우겨요. (웃음)
윤재경
아이 아버지도 주사를 맞습니까.
어머니
아니요, 어른들은 다른 거예요. 그이는 화요일마다 창구 가요. 결혼 전부터 그랬대요. 저는 그런가 보다 해요. 화요일엔 창구, 다달이엔 진료소. 우리 집 달력은 그 두 날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어요. 동그라미 두 개면 한 달이 돌아가요.
윤재경
집의 물건들을 여쭙겠습니다.
어머니
오래된 것들이에요. 재봉틀은 친정에서 온 거고, 라디오는 고쳐서 세 집째 도는 거고. 새 물건은 부엌 펌프 하나. 그것도 십 년은 쓸 거래요. 물건이 귀한데, 귀한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귀하면 아껴 쓰고, 아껴 쓰면 정이 들고.
윤재경
전기는 어떻습니까.
어머니
저녁엔 늘 있어요. 낮에 두어 시간 쉬는 날이 있는데, 미리 방송으로 알려 줘요. 그 시간엔 다들 밭에 있으니까 상관없어요. 밤에 애 숙제할 때 있고, 겨울에 따뜻하고. 그러면 되는 거죠.
윤재경
아이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어떤 아이입니까.
어머니
보시는 대로예요. 하루 종일 뛰어요. 어제는 학교에서 달리기를 했는데 자기가 이겼다고, 저녁 내내 그 얘기만 했어요. 특별한 애냐고 물으시는 거면, 아니에요. 그냥 애예요. 그거면 됐어요. 그냥 애인 게 어떤 건지… 저희는 아니까요.
윤재경
커서 뭐가 되고 싶다고 합니까.
어머니
기관사요. 아빠 기차를 자기가 몰 거래요. 지난달엔 수리집 아저씨였고, 그 전엔 뜨는 사람이었어요. 뜨는 사람이 뭐냐고 물었더니 크레인 위에 있는 사람이래요. 장래희망이 닷새마다 바뀌어요. 바뀔 게 많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윤재경
계절로는 언제가 제일 좋습니까.
어머니
가을요. 감자 캐고, 콩 털고, 장날마다 물건이 제일 많고. 애는 겨울이 좋대요. 눈 오면 학교 안 가는 날이 있어서. (웃음) 눈 오면 온 동네 애들이 다 나와요. 그 소리를 들으려고 어른들이 일부러 눈을 늦게 치운다는 말이 있어요. 맞는 말일 거예요.
윤재경
밤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어머니
애 재우고, 라디오 조금 듣고. 아홉 시 반이면 온 집이 자요. 시골 밤이 그래요. 라디오에서 가끔 옛날 노래가 나오면 끝까지 듣고 자요. 그런 밤이 제일 호사예요.
윤재경
어머님께 요즘 걱정이 있다면요.
어머니
무릎이 시원찮은 거 하나. 그리고 애가 너무 빨리 크는 거 하나. 옷이 철마다 작아져요. 걱정이라고 하기엔 좋은 걱정이죠.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걱정의 크기가 살림의 크기라고. 요즘 제 걱정들은 다 이만해요. (손짓)
윤재경
오래 여쭸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별말씀을요. 이런 얘기를 적어 가시는 게 신기하긴 해요. 특별한 게 하나도 없는 집인데.
윤재경
특별한 게 없는 집 이야기를 모으는 게 일입니다.
어머니
좋은 일 하시네요. 특별한 일들은 힘이 세서 안 적어도 남는데, 이런 건 적어야 남으니까요.
(마당에서 아이가 웃는 소리. 어머니가 이름을 부른다. 밥 먹자, 하는 소리. 뛰어오는 발소리)
윤재경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어머니
네.
윤재경
이름은 언제 지으셨어요?
어머니
태어나기 전에요.
